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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또 나는 어디에 있는가
세상에는 두 가지의 사람이 있다. 트렌드를 따르는 자와 자기만의 트렌드를 믿는 자. 누가 봐도 나는 후자이다. 트렌드를 만들거나 리드할 재간은 없지만 좋아하는 취향 하나만큼은 확고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게 옳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그 힘으로 지금껏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힘의 근원이 달라지고 있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변화를 강요한다. AI나 디지털, 새로운 기술들이 당연시되며 흐름을 바꿔 간다. 새로운 것과 더 새로운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길로 가야 하나 고민만 많고 해결은 되지 않는 시점에, 나는 ADFEST에 가게 되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서 내 일을 지속하고 있는가, 나의 지금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오늘과 내일, 그 경계에서
사실은 두려웠다. 광고제의 모든 순간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 일색이지 않을까, 기술이나 혁신 등 익숙하지만 체감되지 않는 말들뿐이지 않을까. 하지만 행사장을 들어서는 순간, 이번 ADFEST의 주제는 나를 안심하게 했다. <TDAY, TMRRW> 주제와 함께 째깍거리는 아날로그시계가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광고의 오늘과 내일 사이를 천천히 흘러가는 시곗바늘은 마치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건 인텔의 세미나였다. 혁신적인 기술이 브랜드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Tech Innovation은 도도한 첫인상이었지만 속내는 달랐다. 중국의 <The Great Wall> 캠페인은 기술을 이용해 역사를 재건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중국 만리장성의 지안코우 구역을 보호하고 복원하기 위한 이 캠페인은 450년의 시간을 다시 살게 한 기술이었다. 4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연적 침식과 인간에 의한 훼손을 겪은 지안코우 구역은 사람의 손이 닿기 힘든 가장 가파르고 위험한 지역 중 하나이다. 전통적으로 한 달 동안 사람들이 줄자를 사용하거나 육안의 검사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진행되었기에 더 힘들었던 복원작업은 기술로 인해 더 간편하고 쉬워졌다. 드론이 이 구역의 훼손지역을 캡처하고, 모두 데이터로 만들어 복원이 필요한 구역의 데이터를 산출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역사를 새롭게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세상이 변하듯 기술 역시 변화하고 있었다. 기술에는 인성이 더해지고 있었고, 그 기술들은 이제 사람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고민한다. 우리는 종종 우스갯소리로 <AI 크리에이터가 등장하면 우리 밥그릇이 없어질 거야>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람을 위해 진화하며 결국 우리의 일을 더 쉽게 바꿔주는 능력을 보여준다. 나는 그동안 기술을 오해하고 있었다. 기술은 과학에 그쳐 사람을 이기려 들지 않는다. 사람에게 더해져 사람을 도울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기술을 다시금 이해하게 되었다.
Start at user, User is HUMAN
구글은 아예 스토리를 테마로 내세웠다. <WHAT WOULD JULIET DO?>라는 주제로 시작된 세미나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스토리텔링에 새로운 옷을 입히고 있었다. 인도의 디렉터 UMMA SAINI는 오랜 시간 크레이이티브 디렉터로 일해온 경험을 토대로 기술과 인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었다. “스토리를 찾으려면 박스 속을 벗어나세요. 이제는 우리가 가진 스토리의 개념을 바꿔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스토리에 힘이 없으면 미디어의 힘도 빌릴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서 구글이 요즈음 하는 일련의 일들은 일반적이지만 새로운 것들이었다. 딸아이의 모든 일상을 기록한 육아일기를 딸의 이메일 계정으로 보내어 콘텐츠를 만드는가 하면(Google Chrome ‘Dear Sophie’), 기술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술작품까지 세세하게 관찰하고, 나만의 데이터를 만들어 더 나은 예술을 창조하는 기반을 만들기도 한다.(Google ‘Art and Culture’).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었으며, 비주얼에 휴머니티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미디어는 지금껏 우리가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전하며, 인간의 진실된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담기지 않은 미디어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의 스탠다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기술은 사용자에 의한 것이며 그 사용자는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기술의 개발이나 눈부신 발전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Winners: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광고들
이번 수상작들은 대체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Film Lotus 부문에서는 아쉽게도 대상이 없었지만, 흥미로운 금상들이 대상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TBWA Santiago Mangada Puno에서 제작한 <Disgusting Stories>는 성적으로 학대당한 필리핀 어린이들의 실제 삽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남겨진 잔인한 트라우마를 표현해냈다. 순수해서 더 강력하게 각인되는 것들이 있다. ‘역겨운 이야기들’이라는 제목과 상반되는 순수한 비주얼들은 역설적이기에 잊혀지지 않는 임팩트를 만들어내었다.
이 밖에도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도화선 같은 캠페인도 있었다. Innova Lotus를 수상한 유아용품 쇼핑몰 BABYSHOP의 <PARENTHOOD> 캠페인은 모권(母權)이 결여된 아랍어의 문화를 바꿔가고 있었다. ‘부모’라는 단어에서도 어머니는 그 의미에 포함조차 되지 않는 아랍어 문화권에서, 맥켄 에릭슨 두바이는 새로운 디지털 캠페인을 시작한다. 부모라는 단어를 새롭게 만들어 정의 한 것이다. ‘Al Umobuwah’라고 읽히는 아랍어를 만들고, 그 단어를 사용하며 모권 신장에 앞장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확산되고, 급기야 BABYSHOP에서는 ‘Al Umobuwah’ 의류 라인을 런칭 하는 등 중동지역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었다. 좋은 아이디어는 그 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에는 날개가 달려, 무한한 확산력과 영향력을 지닌 채 생각의 흐름을 바꾸고,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나아가 부조리와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왜 광고를 만드냐는 질문에 <내가 만든 광고로 세상을 움직이고 싶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광고로 뭘 바꿔? 충분히 비웃음을 살 만한 대답이다. 광고가 뭐라고. 그런데 그 광고가 뭐라고 우리는 긴 시간 아이디어와 싸우고, 더 나은 생각들을 위해 매 순간 매진한다. 어쩌면 내가 하는 일로 세상의 방향을 조금 더 옳게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허무맹랑할지 몰라도 가끔 꿈꿔본다. 그리고 잊었던 그 초심의 일부를, ADFEST 시상식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돈키호테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우리는 매일 이룰 수 있는 일들을 해내고 있다. 해낼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해내며 저력을 키워온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저 시상대에 올라가 환호하고 있겠지, 시상식을 지켜보던 DCG 가족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저마다의 내일을 그려보았다.
앞으로의 광고를 무엇이라 부르고 싶으세요?
ADFEST에서 만난 친구들 중 일본에서 광고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하얀 종이를 내밀며 우리에게 물었다. ‘미래에 광고를 일컫는 다른 단어가 있다면, 뭐라고 정의하고 싶으세요?’. 나는 ‘Realistic Fantasy’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저 하늘의 별을 따는 일을 하고 있다. 광고는 굉장히 현실적인 판타지다. 오늘날의 모든 크리에이터들은 혁명적인 기술과 현실적인 가능성 앞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우리 역시,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무수한 <앞으로>에 대답하고 있다. 앞으로의 광고, 앞으로의 먹거리, 앞으로의 길… 하지만 그 모든 <앞으로>는 굳건한 지금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 아닐까? 광고제 기간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스토리와 사람이었다. 기술은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스토리는 죽지 않는다, 당신 자신에게 집중하라. 결국 광고의 내일을 바꿔 갈 수 있는 건 오늘의 우리이다. 우리가 대홍기획 안에서 보내는 오늘들이, 언젠가는 눈부시게 달라진 내일을 만들게 되기를 바란다.
류미경 CⓔM / 크리에이티브솔루션 8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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