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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대홍인의 사생활

불금 대신 불곰을

<대홍인의 사생활>은 대홍 크리에이터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사진 에세이 코너입니다.

 

 

 

합격을 원하십니까?

벌써 3년 차. 뜬금없게도 산악회 회장 3년 차로서의 이야기다. 시작은 대홍기획 인턴에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2018년 6월. 학교 선배들이 난데없이 북한산에 가자고 했다. 이유는 없다. 그저 서울 북부에 사는 사람들끼리 모이자는 취지였다. 내 체력은 생각도 않은 채 냉큼 따라나섰다. 웬걸, 해발 510m의 원효봉은 생전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나를 이 땅에서도 멀리 내보낼 참이었다.

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숨이 찼고, 다리는 신경 반경을 벗어난 느낌이었다. 죽을 것 같아 내려가려니 선배들이 농담으로 회유했다. “너 여기 올라야 합격한다.” 그 말을 믿었던 건 아니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혹시 떨어지면 산에 오르지 않은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까 봐. 그렇게 첫 등산으로 북한산 원효봉 정상에 올랐고, 합격에도 이름을 올렸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첫 불곰산악회 모집 포스터

 

최종 합격 후 행복한 백수 생활을 즐기던 그해 겨울, 내 옆에는 마찬가지로 결과를 기다리는 친구가 있었다. 문득 합격을 가져다준 북한산 산행이 생각나 그 친구에게 인왕산에 오르자고 제안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새해 다짐과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함께 했을까, 그도 덜컥 합격해버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정말 산에 오르니 좋은 일이 생겨버렸네?’ 그렇게 될 일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우리가 등산에 산을 오르는 것 이상의 애정을 갖게 된 것은 확실하다.

 

산, 술, 운동

하지만 반년이 지난 2019년 8월, 나는 산을 잊고 지냈다. 대신 똑같이 시옷으로 시작하는 술(?)이 함께였다. 이날은 이날이라서, 저 날은 저 날이라서. 시간이 날 때마다 술을 마시며 놀아댔다. 유독 마시지 못한 요일이 있다면 토요일. 금요일마다 내일이 없을 듯 마셔대 토요일엔 극심한 숙취로 골골댔기 때문이다. 불나게 술 마시는 불금과 쓰린 속 달래느라 물만 마시는 물토를 반복했다.

어김없이 숙취를 앓던 어느 토요일 밤, SNS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건강한 생활을 고작 손가락 하나로 오르내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함께 산에 올랐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렇게 술만 마시다가는 건강을 다 잃겠다’ ‘토요일 아침에 운동해서 금요일에 금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자’ ‘그래!’

 

사실 친구와 이야기하던 그 날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많이 하는 운동은 러닝이나 테니스. 그렇게 흐름이 빠른 운동은 정서적, 육체적으로 속도가 맞지 않을 것 같았다. 더 좋은 기록을 위한, 더 잘하기 위한 운동도 탈락. 러닝크루처럼 여럿이 함께하면서도 대충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했다. 등산이었다.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가져다준 바로 그것.

갑자기 등산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각자의 속도로 오를 수 있다는 것, 대한민국 면적의 70%가 산이라 갈 곳이 넘쳐난다는 것, 춘하추동 일 년 내내 상시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든 건 대충 올라도 언젠간 오른다는 것. 거지 같은 체력으로도 덤벼 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쭙잖고 즐거웁게

곧바로 SNS를 검색했다. 우리가 그리는 느낌의 산악회가 많지 않았다. 젊고 대충 오르는 산악회가 필요해. 이름부터 지어야 했다. 왠지 모르게 엄청난 산악회일 것 같은 느낌은 필수. 트렌디하거나 힙해보이면 안된다. 40~50대 장년층의 산악회와 섞여도 이질감이 들지 않아야 한다. 이 모든 걸 아우른 이름, 바로 무시무시한 ‘불곰산악회’. 모토도 쉽다. 불금을 피하기 위한 우리의 최소한의 의지만 반영되면 충분했기에 거창한 목표나 의미는 필요 없다. ‘불금 대신 불곰을’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은 그게 맞으니 웃고 넘기면 될 일이다. 계정을 파고, 허접한 포스터를 만들어 공유했다. 사람 좋아하고 산도 좋아하고, 서툴러도 천천히 오를 우리와 같은 사람을 기다리며 말이다.

 

인왕산 첫 등산 후 찍은 단체 사진

 

성공적이다!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모집 정원인 10명을 금방 채웠다. 지인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모집 마감 게시물을 올렸고 서둘러 현수막도 제작했다. 그렇게 2019년 9월, 불곰산악회의 첫 등산 모임을 시작했다.

긴 프롤로그(?)였다. 벌써 14차 정기 등산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로 잠시 멈춰가고 있는 지금이 기회이지 싶다. 그동안 재미있었던 불곰의 에피소드를 남겨둘 기회. 어딘가 글을 남길 공간을 생각해왔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다. 이제는 취미에 관한 물음에도, 주말에 뭐하냐는 물음에도 바로 답하는 사람이 됐다. ‘산악회 회장’이라고 하면 약간의 놀라움이, 이름은 ‘불곰산악회’라고 하면 더 큰 놀라움이 따라온다. 덕분에 세상 어려웠던 자기소개가 조금 쉬워졌다. 앞으로 이 공간을 빌어 자기소개를 길게 해볼까 한다.

 

* 불곰산악회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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