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멈칫. 어느샌가 [댓글보기] 버튼을 누르는 손이 주춤한다. 이른바 프로불편러의 비판(난)을 읽는데 진이 빠졌기 때문이다. 아니, 뭐 이런것까지 이렇게 불편하게 보나- 싶은 생각이 든다. ‘복세편살’이라고 하지 않는가. 복잡한 세상 좀 편하게 살면 안 되나? 난 프로불편러가 유독 불편하다.
아마도 그들의 반응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업을하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아,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에 예상되는 반응만 나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어쩌다 한번 프로불편러의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보았다. ‘음 이럴 수도 있겠군’ 인정하니 생각의 면이 하나 더 생겼다. 생각의 면이 늘어나자 크리에이티브 역시 다변화되었다. 다양성은 다름을 인정하는 출발이자, 색다른 솔루션의 핵심 에센스가 되곤 한다. 여기 다양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한 캠페인 세가지를 소개한다.
The Refugee Nation / Amnesty International
지금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전쟁으로 나라를 잃은 난민이 수없이 존재한다. 그들은 나라가 없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무소속’이며, 그러기에 당연히 올림픽 출전도 불가능하다. 그러한 무소속의 ‘난민’을 ‘국민’으로 존중해준 뜻깊은 캠페인이 있다. 바로 Amnesty International의 The Refugee Nation (난민 국가) 캠페인이다.
아이디어는 심플하다. 나라가 없기에 ‘난민 국가’라는 가상의 국가를 만든 것이다. 난민이 국민인 나라답게 국가와(시리아 난민 출신 작곡가 Moutaz Atian가 참여) 국기를(시리아 난민 출신 아티스트 Yara Said가 참여) 제작했다. 국기는 구명조끼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주황색 바탕에 검은선 한 줄이 강렬하게 그어져 있다. 국가가 생긴 난민들은 이 깃발을 ‘국기’로 세계 곳곳에서 펄럭일 수 있게 되었다.
▲Amnesty International - The Refugee Nation (출처: The Refugee Nation 유튜브)
심지어 2016년 리우 올림픽에 당당히 난민 국가 대표팀으로 출전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번 우리 평창올림픽에도 그들이 출전하여 깃발을 펄럭였다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국가를 잃은 난민에게 국가를 만들어준 일, 난민을 난민으로 보지 않고 한 나라의 구성원으로 존중해준 훌륭한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Find Your Greatness / NIKE
스포츠 광고 속 모델은 언제나 멋졌다. 그들은 이미 완성된 근육과 뛰어난 스포츠 실력을 멋지게 뽐낸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퍼포먼스에 부러움과 존경을 표하면 될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을 향한 ‘동경’을 무의식적으로 강요받아왔을지도 모른다. ‘위대함’이라는 것은 이미 완성된 프로들의 것 이라고 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이키의 Find Your Greatness 캠페인은 다양성의 존중, 위대 함이란 모두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영상 속엔 스포츠 광고에선 볼 수 없었던 낯선 모델 과 상황들이 연출된다.
▲Nike - Find Your Greatness:Jogger (출처: Nike France 유튜브)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뱉으며 후줄근한 티를 입고 뛰는 비만인 사람, 체육관이 아닌 마당에서 텀블링을 하는 사람(심지어 이웃은 무심히 지나간다), 거실에서 TV 보며 의자 위 물구나무서기를 시도하는 사람, 그다지 놀랍지 않은 높이에서 다이빙을 망설 이는 사람.
이들은 모두 각자의, 있는 그대로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캠페인은 위대함이란 특정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며, 정형화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설사 스포츠 광고 속 멋진 몸매가 아니어도 말이다.
This Is Wholesome / Honey Maid
허니메이드의 브랜드 에센스는 ‘건강함’이다. 그러기에 ‘#ThisisWholesome: 이것은 건강하다’ 라는 캠페인 타이틀을 접했을 땐 다소 평이하게 느껴졌다. 건강함이 상징인 브랜드에서 ‘우리 제품은 건강해요!’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제품이 주는 ‘영양학적 건강함’과 다양한 형태의 가족 단위를 인정하는 ‘사회적 건강함’이다.
몇 해 전부터 다양한 성 정체성에 대한 이슈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그 이슈에 맞물려 실행한 이 캠페인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게이부부가 부모인 가족, 온몸에 문신을 잔뜩 한 가장을 둔 가족 등 어쩌면 꽤나 낯선 구성원이 등장한 다. 게티이미지에 ‘건강한’과 ‘가족’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이상적 모습의 가족은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엄마, 아빠 역할의 구성원이 멀끔한 옷을 입고 웃는 모습 = 건강한 가족의 심벌이 아니던가!).
▲Honey Maid - This is Wholesome (출처: Honey Maid 유튜브)
광고에 나오기엔 꽤나 낯선 조합의 가족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건강함’ 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건강이라는 브랜드 핵심가치를 사회적 이슈와 잘 결부시킨 것이다.
‘다양함의 존중’의 다른 말은 곧 ‘더 나은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나리오대로 반응하지 않은 프로불편러. 그들 덕분에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긴장해야 한다.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크리에이티브를 업으로 삼은 이상 다양한 사람들은 의식하고,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오늘부터 난 프로불편러의 댓글을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할 것이다. 물론 그 길이 험난하고 꽤나 불편할지라도 말이다.
노다혜 CⓔM / 디지털캠페인 3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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