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성욱 / 대학내일20대연구소 매니저
최근 우리는 다양한 불안 요소에 노출돼 있다. 혼란한 정국, 경제적 불황과 양극화, 일상화된 갈등, AI의 급속한 발전 등으로 인해 불안이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불안은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우리가 살아갈 힘이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시대의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살펴보면 동시대 사람들의 욕망과 지향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Z세대는 어떨까? 오늘보다 내일이 더 살기 힘든 우하향의 시대, 흥미롭게도 Z세대는 불안을 긍정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이는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Z세대가 시대의 불안에 대처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오히려 좋아, 중꺾마에서 원영적 사고로
작년부터 대한민국을 휩쓴 신조어 가운데 ‘oo적 사고’라는 말이 있다. “럭키비키잖아”로 대표되는 장원영의 ‘원영적 사고’부터 “잔디가 안 좋으면, 그냥 좋다고 생각하면 돼”라는 ‘흥민적 사고’, 결과를 떠나 일단 시도해본다는 ‘펠리컨적 사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고관이 유행했다.
이처럼 한 시대에 많은 공감을 사며 발화된 신조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세대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oo적 사고’ 이외에도 최근 몇 년간 Z세대 사이에서 유행한 표현에는 긍정이 스며들어 있다. Z세대는 힘든 상황에서도 ‘오히려 좋아’, ‘나락도 락이다’, ‘행집욕부(행복에 집중하자 욕심부리지 말자)’라고 외치며 마음을 되새기곤 한다.
단순히 밈으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다짐으로 삼으며 긍정을 체화하려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긍정의 언어로 불안에 대처할 동력을 얻는 것이다. 이를 ‘포지티브 모멘텀’이라 부른다(<Z세대 트렌드 2025>, 대학내일20대연구소).
초긍정 사고방식의 주인공인 장원영은 최근 출판 시장에서도 핫한 셀럽이다. 그녀가 유튜브에서 소개한 철학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교보문고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크게 주목받았다. 또 다른 방송에 출연해 철학서인 <초역 부처의 말>을 추천했고 이 역시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Z세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두 서적이 유독 젊은 층에 관심을 끄는 이유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레퍼런스로 삼으려는 것에 있다.
또 Z세대에게 의외로 인기를 끄는 것이 있다. 바로 불교다.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관람객 80%가 2030 세대였다. SNS에 방문 인증이 잇달았고, ‘깨닫다’ 티셔츠와 ‘극락도 락이다’ 문구는 단숨에 밈이 돼 퍼져나갔다. 이런 관심은 불교가 힙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교의 철학과 이미지가 Z세대의 가치관과 맞닿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유연한 사고,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온전히 잘 보내고자 하는 젊은 층의 지향과 연결되고 있다.
장바구니에 긍정을 넣는 사람들
‘긍정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포지티브 모멘텀은 소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네잎클로버 아이템이 인기다. Z세대가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 네잎클로버를 모티브로 한 키링과 엽서, 스티커 등 행운을 빌어주는 아이템을 볼 수 있다. 태그 하면 그날의 운세를 알려주는 NFC 네잎클로버 키링은 품절템으로 주목받았다. 이른바 ‘행운 굿즈’에 Z세대의 지갑이 열리는 것이다. Z세대는 귀여운 캐릭터 부적과 액막이 명태 키링, 긍정적인 문구가 담긴 텍스트 수건까지 다양한 굿즈를 선물하며 긍정을 주고받는다. Z세대는 왜 긍정을 소비하는 걸까? 이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행운이 아니다. Z세대는 불안이나 부정적 상태에 머무르기보다는 그때그때 해소하려는 니즈가 두드러진다.
AI를 통해 불안을 관리하는 방식도 눈길을 끈다. 어떤 부정적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해석해주는 ‘원영적 사고 GPT’ 챗봇이 나타나더니, AI에 건달이나 집사 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한 뒤 현실 고민을 토로하고 위로받는 밈이 Z세대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기업에서도 불안 관리나 긍정, 행운을 매개로 한 마케팅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밀리의 서재는 2025년 새해를 맞아 ‘쇼펜하우어 AI 챗봇’을 선보였다. 냉철하고 현실적인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AI에 교육시킨 뒤 ‘작심삼일 타파’ 챌린지를 전개했다. 쇼펜하우어와 상담하는 컨셉으로 사람들이 새해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도록 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행집욕부’의 창시자인 크리에이터 셍이와 협업해 ‘감정가게’ 서비스를 운영했다. 이름만 입력하면 셍이의 AI 보이스로 특유의 ‘긍정 갈기기’를 들을 수 있어 재미를 준다. 불안한 감정을 빠르게 해소하고 환기하려는 Z세대의 니즈를 저격한 마케팅으로 볼 수 있다.
‘럭키’, ‘행운’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모션도 주목받고 있다. 크리스피크림 도넛은 네잎클로버 모양의 럭키 클로버 도넛, 한자로 복(福)이 새겨진 복주머니 도넛을 출시했다. 유병재가 기획한 ‘모리스&보리스 행운던전’ 팝업스토어에서는 실제 ‘네잎클로버 밭’을 구현해 네잎클로버를 찾으면 ‘운빨굿즈’를 만들 수 있는 체험을 시도했다. 또 유병재의 음성을 활용한 행운 주파수존이 마련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제주삼다수는 WAVE 팝업스토어에서 요가, 필라테스 등 체험을 통해 일상 속 작은 변화를 유도하는 등 긍정에서 한걸음 나아가 불안을 해소하고 힐링과 여유를 찾는 마케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시대마다 불안은 늘 존재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Z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불안에 긍정적으로 대처한다는 점이다. 신조어나 밈을 통해 긍정적인 가치관을 체화하고, 사람들과 행운 굿즈를 주고받으며, AI를 활용해 마음가짐을 다잡고 위로받는 모습까지 나타난다. 2025년, 포지티브 모멘텀을 바탕으로 Z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긍정을 활용한 제품과 서비스는 계속해서 성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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