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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d-Issue

소비하는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

 

글 정희선 / 트렌드 분석가, 애널리스트. 도쿄에 거주하며 산업 트렌드를 분석하고 전달한다. 저서 <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외.

 


 

“그때, 그 자리에서만 맛볼 수 있는 흥겨움”

‘순간 소비’라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한 줄로 설명한 문구다. ‘순간 소비’는 일본의 소비 트렌드 분석 기관인 하쿠호도 생활종합연구소(博報堂生活総合研究所)가 제안한 개념으로 일본어로는 ‘도키 소비(トキ消費)’라고 한다.

 

무엇을 느끼고 어디에 지갑을 열 것인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소비의 축이 ‘소유’에서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 1970~80년대에는 남들보다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1990년대부터는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데서 가치를 찾는 ‘경험 소비’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경험 소비 중에서도 특정 순간의 즐거움이나 체험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할로윈 기간에 분장한 사람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거나,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에 가서 열광하고, 스포츠 경기장에서 함께 응원하거나, 특정 브랜드끼리 콜라보해 만든 팝업 카페를 즐기는 모습 등이 있다. 이러한 경험의 공통점은 특정 순간에만 체험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같은 즐거움이나 감동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순간 소비’와 ‘경험 소비’의 차이다.

 

라이브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즐기며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대표적인 순간 소비의 예다. / 출처 coachella.com

 

그렇다면 순간 소비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에 따라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행복에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정서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소유하기보다 경험과 참여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으며, 한 발 나아가 ‘그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구가 높아졌다. 특히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Z세대 사이에서 순간 소비를 즐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는 남들과 차별화된 경험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둘째, 외로움과 단절에 대한 공포감 또한 젊은 층에서 순간 소비가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요즘 Z세대는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쉽게 살펴볼 수 있으며,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존재한다. 많은 경우에 순간 소비는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순간 소비 관련 이벤트에 참여하며 소속감을 얻는다.

 

참여, 교류와 공감으로 확대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시설은 순간 소비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2024년 3월 도쿄 오다이바에 문을 연 ‘몰입형 테마파크’인 ‘이머시브 포트 도쿄(Immersive Fort Tokyo)’는 기존의 테마파크와는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유럽의 한 마을을 재현해 놓은 공간에 들어서면 중세 유럽 복장을 한 스태프가 말을 건넨다. 공간에 들어선 순간 방문객은 가상의 마을에 사는 주민이 되어 곳곳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몰입형 쇼에 참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더 셜록’은 명탐정 셜록 홈스가 용의자를 쫓듯 관객들이 스토리에 참여해 함께 수수께끼를 풀거나 등장인물을 따라다니며 스토리에 몰입하는 90분짜리 쇼다. ‘에도 오이란 기담’에서는 200년 전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100개 이상의 스토리와 등장인물을 만날 수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인 ‘앨리스인보더랜드’를 배경으로 만든 ‘이머시브 데스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폭탄을 목에 착용하고 살아남기 위해 게임을 한다. 범죄 현장의 목격자, 파티의 주인공, 독약 살인자, 테러리스트 등 다양한 설정 속에 관객이 어떻게 참여하느냐에 따라 체험과 결말이 달라진다. 매번 같은 스토리는 없기에 몇 번이고 이머시브 포트 도쿄를 방문하는 사람도 많다. 그 순간에만 유일무이한 경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경험과 자극을 선사한다.

온라인 다이닝 서비스인 ‘줌 메시 (ズムメシ)’ 또한 특정 순간에만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줌 메시는 각 가정이 같은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집으로 주문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줌(Zoom)을 통해 만나는 모임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요리사나 식재료 생산자도 함께 참여해 식재료의 특징, 음식의 역사 등에 대한 해설을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레스토랑에 가더라도 손님이 요리사나 생산자와 함께 식사하는 기회를 가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온라인을 활용함으로써 음식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모이는 특별한 순간을 만드는 것이 쉬워졌다. 계절에 따라 다른 음식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의 구성에 따라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기에 매번 다른 경험을 즐길 수 있다.

 

특별한 체험이 더해진 제품으로

서비스만이 아니다. 제조사들도 순간 소비에 주목하고 있다. 맥주 제조사인 산토리가 만든 ‘비어볼(ビアボール)이 젊은 층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비어볼은 자신이 원하는 알코올 농도의 맥주와 탄산을 섞어 마시는 제품으로 위스키에 탄산수를 넣어 만드는 하이볼과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20대가 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맥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산토리가 Z세대의 순간 소비에 주목해 개발한 제품이 비어볼이다.

산토리는 지금의 20대가 맥주를 마시게 하기 위해서는 맥주 자체를 맛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맥주를 마시는 순간에 무언가 즐거운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맥주에 탄산수나 다른 음료를 섞어 자신만의 ‘오리지널 음료’를 만드는 순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알코올 농도로 커스텀 가능한 맥주 비어볼. 나만의 오리지널 술을 만드는 과정에 재미를 줘 Z세대를 공략했다. / 출처 suntory.co.jp

 

비어볼의 홍보 전략도 ‘나만의 비어볼을 만드는 순간’에 집중한다. Z세대는 누구나 인플루언서라고 할 만큼 새롭거나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적극적으로 SNS에 공유한다. 이에 산토리는 비어볼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에 만들고 비어볼을 만드는 장면을 소비자가 스스로 SNS에 올릴 기회를 제공했다. 틱톡을 주된 홍보 채널로 활용했는데 이는 찰나의 재미를 포착하는 순간 소비를 발신하기에 가장 적합한 채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새로운 소비 행태가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이후 ‘경험(고토) 소비’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시간 대비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성비(타이파)’와 순간의 체험을 추구하는 ‘순간(도키) 소비’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된다. 한국에서도 최근 경험 소비뿐만 아니라 가성비, 가심비 그리고 안티 플렉스라는 소비 트렌드가 관찰된다. 이를 보면 지금의 소비자들은 값비싼 물건보다 유니크한 경험에 지갑을 열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순간 소비에 참여하는 이유 또한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된 나만의 경험을 즐기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기획하는 마케터들이 순간 소비에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특정 순간에만 참여할 수 있는 규칙이나 룰을 만들거나, 날짜와 시간을 제한함으로써 비재현성을 높이고 새로운 ‘순간’을 창출한다면 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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