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손현 / 작가, 콘텐츠 매니저.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공장을 짓다가 지금은 기업과 개인이 글 짓는 일을 돕는다. 저서 <글쓰기의 쓸모>, <아무튼, 테니스>,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썬데이 파더스 클럽>(공저), <에디터의 기록법>(공저) 외.
“잘 지내지? 주변에 소개팅해줄 사람 있을까? 같은 회사 32살 남자 후배인데… 부담 갖진 말고.”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소개팅’이란 단어를 듣는 건 더 오랜만이었다. 뜬금없는 연락이지만, 우연히 그즈음 A에게도 소개 요청이 들어온 터라 둘을 연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동료에게 A의 사진을 보냈고, A에게는 동료의 후배 사진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몇 시간 뒤 메시지가 왔다. “미안한데 자기 스타일이 아니래.”
개성, 취향 그리고 스타일을 더욱 뾰족하게 갈고닦아야 한다고 권하는 시대다. 동시에 좋고 싫음마저 뚜렷한 요즘 사람들은 새로운 이를 만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만, 아무나 만나고 싶진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내게 꼭 맞는 상대를 한 번에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에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거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비용으로 인식해 스스로를 더 외로운 환경에 두는 걸로 보인다.
고독과 소외가 심화되는 사회
이런 현상이 연애 상대를 구할 때만 국한된 건 아니다. 1인 가구의 증가, 코로나 3년 동안 이어진 사회적 격리를 경험하면서 외로움은 전 사회와 연령층에 걸쳐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고립의 시대>를 쓴 노리나 허츠 명예 교수는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속적 고립은 매일 담배를 15개비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라고 말하며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외로운 연령층은 청년층”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관계를 중시하는 특성 때문에 외로움에 더 취약하다.
‘외로움 경제(Loneliness economy)’란 말도 등장했다. 외로움을 겪는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정서적, 사회적, 심리적 필요를 충족하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제 영역을 뜻한다. 말 그대로 외로움을 사고파는 시장이 열린 셈이다.
3D 아바타로 인물을 설정해 채팅할수록 개인 맞춤형으로 진화하는 AI 챗봇 레플리카(Replika)
Z세대는 기존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외로움 경제를 활용 중인 걸로 보인다. 이들은 주로 디지털 환경에서 느슨한 형태의 연결을 추구하며 미국의 AI 반려인 레플리카(Replika), 국내의 심심이, 이루다 등 감정교류형 챗봇이나 트레바리, 넷플연가, 문토, 프립 등 취향 중심의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안정감을 찾는다.
이들에게 자기 돌봄은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다. 개인의 성장과 내면의 변화를 이끄는 플랫폼 ‘밑미’처럼 멘탈케어나 명상 콘텐츠 등 정신적 웰빙에 투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반려동물 또는 반려로봇을 통해 정서적 교감을 채우기도 한다. 일본 기업 그루브 엑스에서 개발한 반려로봇 러봇(LOVOT), AI와 센서를 탑재한 소니의 아이보(Aibo),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페퍼(Pepper) 등의 약진이 눈에 띈다. AI와 로봇공학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반려로봇은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넘어 가정 보안, 노인 간병 등 더욱 다양한 쓸모를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반려로봇 러봇은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를 내거나 춤을 출 수 있으며 센서와 카메라로 공간을 인식해 집을 지키는 역할도 한다.
소통, 관계 맺기의 요즘 방식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Z세대가 AI와 로봇에는 대체로 관대한 반면, 동등한 사람에게는 더 엄격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튤립(2ulip)’은 50가지 질문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에 어울리는 상대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소개팅 앱이다. 튤립의 50 문답 중에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결혼, 출산 후 커리어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해요?’ ‘20~30대 소비 어떻게 생각하나요?’ ‘행복을 위한 경제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사귀는 사이에 스마트폰 공개 괜찮나요?’ ‘사귀는 사람이 자기 종교를 따라달라고 한다면?’ 현실의 삶이 각박한데, 누군가를 만나기도 전에 어려운 질문에 답하느니 차라리 외롭거나 AI 챗봇과 대화하고 말겠다는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나에게 외로움은, 적어도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사치스러운 감정이 됐다. 아이와 붙어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하루 중 잠시나마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갖기도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내게도 ‘외롭다’는 감정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쓰고 아이와 단둘이 있을 때였다. 평일 오전 동네 놀이터에서 다른 아빠의 존재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과 같았다. 대체로 아이를 돌보는 엄마나 할머니들뿐. 당시 아이가 말도 못하던 때라 외롭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은 나중에 나와 비슷하게 육아휴직을 경험한 다른 아빠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외로움이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뜻한다. 사람이 사람을 외롭게 하는 가장 큰 까닭은 무엇일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내면이 깊고 복잡하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때때로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을 느끼고 있다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아보자. 그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교감하는지 관찰하면서 외로움 경제의 힌트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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