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지원 / 제이앤브랜드 대표. 아이덴티티, 기획, 브랜딩,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두루 경험한 후 다방면에서 마케팅 솔루션을 풀어낸다. 저서 <뉴그레이>, <맥락을 팔아라>, <꿀벌, AI 그리고 브랜드> 외 다수.
외로움의 역설이라고도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가 외로움과 소외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세대라고 하니 말이다. 2024년 GWI의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80%가 외로움을 느끼며 이는 베이비붐 세대와 비교해 두 배 가까운 수치였다. SNS로 24시간 연결돼 있는 Z세대는 왜 더 외로울까? 이 또한 Z세대의 추구미일 뿐일까?
젊은 세대를 잠식해가는 불안
2024년 옥스퍼드대학 출판부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Brain Rot(뇌 썩음)’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이는 젊은 세대들의 과도한 컨텐츠 주입에 대한 염증을 대표하는 단어다. 릴스와 틱톡을 하염없이 스크롤하며 매 순간 낯선 또래들과 연결돼 있는 감각 속에서 정작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는 Z세대의 자조이기도 하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심리상태인 FOMO(Fear Of Missing Out)는 실로 강력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다양한 경험에 안테나를 세워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하지 않으면 소외돼 기회를 놓칠 것이라는 압박과 불안은 외식, 쇼핑, 스포츠, 공연 등 다양한 분야의 소비지출로 이어져 산업을 막론하고 젊은 세대의 불안감을 연구하게 만들었다.
FOMO는 강력했지만 FOMO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보다 더 강력해서 서서히 반작용을 만들어냈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JOMO: 놓치는 것의 즐거움(Joy Of Missing Out)’이라는 해시태그로 집에서 차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영상을 올렸다. 이것이 틱톡에서 200만 회 이상 조회되며 화제가 됐고 이후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현상이 확산됐다. 작용이 강하면 반작용 역시 강해지는 것처럼 FOMO의 강력한 지배력만큼이나 의미 있는 현상으로 JOMO가 다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페이스북, X의 가벼움과 인스타그램의 자기자랑에 지친 Z세대에게 필터나 좋아요 없이 적나라한 소셜앱 비리얼(BeReal) 같은 대안이 나타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사실 모두가 이야기하는 드라마가 내 취향이 아니라면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되고, 며칠이면 사그라들 인기 릴스를 모른다고 해서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체감한 사람들은 SNS를 줄이고 책을 찾아보며 차를 마시고 산책을 즐긴다. 유행과 탐색에서 개인과 정신 건강으로 초점을 옮겨간 Z세대의 JOMO 경향은 특히 뷰티나 레저, 웰니스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LVMH가 투자한 침술뷰티
미국 뉴욕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브랜드 ‘WTHN(within, 위딘)’은 동양의학을 기반으로 한 모던한방 스튜디오다. WTHN은 온열매트와 함께 침술, 아로마테라피, 사운드 명상 등을 결합해 몰입적 치료 경험을 제공하며 차분하고 세련된 웰니스 경험을 유도한다. 스튜디오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셀프케어 제품 구매와 경험으로 이어지는데 사용이 쉽고 스타일리쉬한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제품 중 하나는 ‘바디 컵핑 키트(Body Cupping Kit)’로 전통적인 부항 요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기존의 유리 부항과 달리 실리콘 소재를 사용해 안전성과 편리성을 높였으며 요가나 필라테스 등 운동 후 회복을 돕는 힙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보는 순간 구매욕을 자극하는 ‘지압 매트(Acupressure Mat Set)’ 역시 히트 제품이다. 수백 개의 지압 포인트가 신체의 경락을 자극해 스트레스 해소, 통증 완화, 수면 개선 등의 효과를 제공한다. 소란스러운 모임과 값비싼 관리로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한 공간에서의 경험을 셀프케어로 연결시킨 지점은 위딘을 젊은 세대들뿐 아니라 LVMH 등 투자시장에서도 매력적으로 이끌고 있다.
나에게 집중하는 여행
온종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우리는 의도적으로 단절의 환경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FOMO 극복을 위한 가장 확실하고 적극적인 방법은 잠시나마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아웃바운드 호텔(Outbound Hotels)은 도시에서 떨어진 산과 들, 강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고객을 초대한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단순히 방문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그 지역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지역 문화, 야외 활동, 모험을 즐길 수 있다.
오두막을 연상케 하는 아늑하고 현대적인 호텔에 머물면서 하이킹, 야생동물 관찰, 스키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고 숲을 낀 뒷마당에서는 현지 식재료와 와인을 곁들인 파티가 열린다. 숲으로 걸어가 여유로운 산책을 하거나 큰 호수를 끼고 있는 곳이라면 가만히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는 등 고요한 자연과 하나 되어 온전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의 리트릿을 누릴 수 있다.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Z세대에게 아웃바운드 호텔은 SNS 연결을 잠시 중단하고 낯설고도 익숙한 자연과 다시 연결되자고 제안한다. 또한 개인뿐 아니라 젊은 직원이 많은 기업의 워케이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과 휴식을 경험하고 조직문화를 리프레시하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자연으로 떠나는 웰니스 여행을 제안하는 미국의 아웃바운드 호텔. 방문객 아닌 짧게나마 그 공간에 소속된 사람으로 지역 문화,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FOMO가 ‘네가 무엇을 하는지 보여줘’였다면 JOMO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해 봐’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는 이러한 변화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그 언어는 조용하고 실용적이며 성찰적이다. 침묵과 단절의 욕구는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는 지금을 살아내려는 Z세대의 생존 방식이다.
단언할 수 없지만 우리는 지금 ‘내향성 경제’의 출발점을 경험하고 있다. 2024년 미국 맨해튼 연구소 선임 연구원인 앨리슨 슈래거(Allison Schrager)는 기고문을 통해 내향성 경제를 제안하며 변화의 징조를 설명했다. 외향성에 적합한 집단주의적 소비문화를 지나 개인 중심의 조용한 경험 소비가 시작되고 있다. 브랜드는 사교적이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환경, 보여주지 않아도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가치를 찾는 소비자를 탐구하고 있다. 마케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피하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떠나는 소비, 멈추는 소비, 조용히 머무는 소비가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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