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지혜 /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석·박사, <트렌드 코리아 2014~2025> 공저. 소비자 심리 이해와 소비 트렌드 분석에 관해 연구하고 강의한다.
“저는 ENFP인데 웜톤 봄이고 HSP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이 립스틱은 제 퍼스널 컬러에 안 맞을 것 같아요.” 최근 화장품 매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다. 요즘은 자신을 설명할 때 최소 3가지 이상의 분석 결과를 조합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현대 소비자들은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에 머물지 않는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나’를 탈착하며, 각각의 자아에 최적화된 소비를 추구한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미이즘(Meism)’이라는 새로운 소비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Meism은 ‘Me(나)’와 ‘ism(주의)’을 결합한 용어로 나의 취향과 정체성을 중시하는 문화적 흐름을 의미한다.
미이즘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소비 결정 이전에 반드시 ‘나는 누구인가?’, ‘나에게 무엇이 맞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들에게 소비는 단순한 욕구 충족이 아니라 자아실현과 정체성 확인의 수단이다. 이들은 브랜드의 명성이나 타인의 시선보다는 ‘나다움’을 우선시한다. 그렇다면 미이즘의 현상은 어떻게 나타날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나
첫 번째 현상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유연한 추구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추구하는 아름다움(美)의 준말인 ‘추구미’는 개인이 지향하는 모습과 이미지는 물론 취향과 가치관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최근 2030 세대 사이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추구미는 그동안 이야기하던 롤모델과는 다르다. 롤모델이 동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되고 싶어 하는 일반화된 ‘워너비(Wannabe)’라면, 추구미는 각자가 자기 이상형을 따르는 개인화된 지향점이다. 롤모델이 연예인 같은 특정인을 지칭한다면, 추구미는 그 사람을 넘어서는 분위기·느낌·아우라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나, 집에서의 나, 취미활동을 할 때의 나가 각각 다른 소비 패턴을 보일 수 있다. 한 사람이 평일에는 미니멀한 오피스룩을 추구하다가 주말에는 힙한 스트릿 패션을 즐기고, 여행 시에는 액티브웨어에 집중하는 식이다. 각각의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브랜드와 제품을 선택하지만, 이를 일관성 없는 소비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자아를 탐색하고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식한다.
더 세밀하게, 더 적합한 것으로
두 번째 현상은 ‘나다움’을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성격, 외모, 건강, 라이프스타일 등 자신의 모든 측면을 데이터화하고 분석한다. 이제 MBTI는 유행을 넘어 대중화의 단계에 진입한 듯하다. MBTI 성격유형 검사 경험률은 2021년 31.6%에서 2023년 52.8%로 급증했으며, 이제는 MBTI를 넘어 다양한 테스트가 등장하고 있다. HSP(매우 민감한 사람) 테스트, 테토-에겐(호르몬 기반 성향분석) 테스트 등 더욱 세분화된 분석 도구들이 일상 속에 자리잡는 추세다. 피부도 정교하게 타입을 나눈다. ‘건성/지성/복합성’ 구분에서 ‘민감성 수부지(수분이 부족한 지성피부)’, ‘트러블성 복합성’ 같은 16가지 ‘피부 MBTI’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유전자 검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비자 직접 판매(DTC, Direct-to-Consumer) 유전자 검사 시장은 20대 소비자에게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DTC 유전자 검사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검사 키트를 받아 집에서 간편하게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 분석 서비스다. 이를 통해 자신의 유전적 특성을 파악하고 질병 위험도를 예측한다. 또한 데이터를 근거로 식단, 운동, 피부 관리 등 ‘나에게 맞는’ 건강관리를 설계한다.
세 번째 현상은 소비자들이 자신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만족도 높은 선택을 추구한다. 넘쳐나는 정보와 선택지 속에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옵션을 찾아낸다. 사실 AI가 본격화되면서 최적선택은 ‘맞춤화’로 진화하는 추세다. 일례로 한국콜마는 AI에 기반한 맞춤형 스킨케어 솔루션을 선보인 바 있다. 특히 면봉으로 손쉽게 피부를 진단하고 맞춤형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이즘 트렌드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마케팅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첫째,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기술에 대한 투자가 필수가 됐다. 단순한 개인화를 넘어서 소비자의 ‘디테일한 나’를 정확히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는 AI, 빅데이터, 머신러닝 기술이 요구된다. 뷰티, 패션, 식품, 의료, 여행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개인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둘째, 데이터 수집과 분석 역량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소비자의 성격, 라이프스타일, 신체적 특성, 구매 패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윤리에 대한 책임도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이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가 필요해 보인다.
셋째, 브랜드 로열티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미이즘 소비자들은 브랜드 자체보다는 ‘나에게 맞는가’를 기준으로 선택한다. 따라서 기업들은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기보다는 소비자의 다양한 페르소나와 상황에 맞는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넷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이 가속화되고 있다. 구독 기반의 맞춤형 서비스, AI 컨설팅 서비스, 개인화 제품 제작 서비스 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의 자아 분석을 도와주는 ‘셀프 애널리틱스’ 서비스 자체가 하나의 비즈니스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이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자 소비 철학이다. 이러한 변화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응하는가는 미래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나’를 이해하고, ‘나’에게 최적화된 소비는 무엇인가? 소비 기준의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 시장이 응답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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