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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d-Issue

더 정교해지는 브랜드의 감각 설계

 

글 황지영 /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UNCG) 마케팅 전공 교수. 저서 <리테일의 미래> <리:스토어> <잘파가 온다> 외.

 


 

한때 미국을 상징하던 애버크롬비 앤 피치(Abercrombie & Fitch) 매장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매장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느껴지는 브랜드 특유의 향 그리고 마치 클럽처럼 울려 퍼지는 큰 음악 소리였다. 소니 매장은 계절에 따라 향을 달리해 여름에는 보다 가볍고 청량한 향을, 겨울에는 시나몬처럼 아늑하고 달콤한 향으로 고객을 맞이했다. 또한 킷캣의 광고는 ‘Break Time, Anytime’이라는 태그라인과 어울리게 ‘크랙(Crack)’ 소리를 특징적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매장에서 흐르는 음악이나 향기 등 무형의 감각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그 브랜드만의 고유한 ‘바이브(Vibe)’를 만든다. 사전에서는 바이브를 ‘emotional state or the atmosphere of a place as communicated to and felt by others’로 정의하는데 이는 어떤 장소에서 타인 혹은 타개체에게 소통되고 느껴지는 그 장소만의 분위기나 감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오감을 활용해 브랜드와 장소 각인

위의 사례들은 마케팅 용어로 설명하자면 감각 마케팅 또는 센서리 마케팅(Sensory Marketing)에 해당한다. 사람의 오감(五感)을 자극해 해당 브랜드나 장소를 인상 깊게 만들어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향상하고 보다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적 접근 방식이다. 감각 마케팅은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미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한다.

 

(좌) 버거킹은 중남미 지역을 대상으로 라디오 채널의 빈 주파수에 패티를 굽는 소리를 송출하는 <Flaming Grill Radio> 캠페인을 선보였다. (우) 밀리의서재는 소설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 홍보를 위해 가수 안예은과 함께 ‘소설 음감회’ 이벤트를 진행해 소설 IP를 기반으로 한 OST 공개, 에피소드별 플레이리스트 등 소설을 청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제공했다. / 출처 @proximitycolombia, @millie_bookclub

 

앞서 언급한 사례 외에도 맥도날드의 광고 끝에 나오는 일관된 징글(Auditory), 애플의 브랜드 로고(Visual), 베이커리에서 풍기는 빵 굽는 향기(Olfactory), 코스트코의 상호작용 기반 시식코너(Taste) 등도 대표적인 감각 마케팅 사례로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매출을 견인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점을 제공한다. 우선 매출 향상에 기여한다. 영국의 시장조사 기관 월넛 언리미티드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감각 마케팅은 매장 내 매출을 약 10%까지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서는 감각적 요소가 적용된 환경에서 소비자들이 구매한 상품 개수가 4% 더 많고, 평균 구매 가격도 6% 더 높았다. MRC(구 닐슨 뮤직)에 따르면 72.6%의 소비자가 리테일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을 인지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매장은 매장 내 구역(예: 와인 섹션 vs 잡화 섹션), 시간(아침 vs 오후), 매장 위치(예: 뉴욕 vs 마이애미)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타깃 소비자가 선호할만한 음악을 전략적으로 선곡한다. 이런 전략은 소비자-브랜드 간 감정적인 연결을 강화하는 동시에 브랜드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보다 디테일한 바이브 만들기, 멀티센서리 브랜딩

최근에는 하나의 감각을 넘어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멀티센서리 브랜딩(Multi-sensory Branding)이 주목받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단일 감각을 활용할 때보다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결합할 경우 브랜드 회상이 최대 70%까지 증가한다는 결과가 있다. 멀티센서리 브랜딩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감각적 컨셉과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타깃 고객이 선호하는 푸드나 컬처 코드와 연관시키는 전략이 유효하다. 패키징 역시 단순하지만 감각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헤일리 비버의 뷰티 브랜드 로드는 소비자의 여러 감각을 자극하기 위해 음식과 제품을 연관시키는 캠페인을 활용한다. 소비자들은 이로부터 영감 받은 디저트를 만들어 SNS에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 출처 @rhode, @bby.bruh

 

뷰티 브랜드 로드(Rhode)를 살펴보자. 헤일리 비버가 만든 로드는 현재 350만 명 이상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브랜드의 이미지 및 캠페인에서는 케이크, 페이스트리, 달콤한 간식 등 디저트에서 영감 받은 시각적 요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바닐라 케이크’라는 이름의 펩타이드 립 트리트먼트인 ‘슈가 쿠키’ 립밤처럼 디저트명을 제품명에 반영하고, 실제 디저트와 함께 촬영하거나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특유의 감각적 세계를 구축했다. 반짝이며 쫄깃하게 보이는 텍스처를 강조함으로써 스킨케어 루틴을 탐닉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으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크리스피 도넛의 ‘스트로베리 글레이즈드’에서 모티브를 따온 립 트리트먼트를 선보이며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로드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를 표현한 디저트를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자발적으로 공유하기도 한다.

 

디저트 브랜드와 협업해 미각, 시각적으로 색다른 자극을 시도하는 패션 브랜드 토리버치 / 출처 @bloomingdales, bonbonnyc.com, @toryburch

 

패션 브랜드 토리버치(Tory Burch)는 최근 스웨덴의 컬트 캔디 브랜드 본본(BonBon)과의 한정판 협업을 통해 장난기 가득한 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픽앤믹스 사탕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질감과 색감, 달콤함을 의류와 액세서리에 담아냈다. 대표 아이템인 밀러 샌들은 바나나, 딸기, 바닐라 같은 마시멜로 색감으로 제작됐고, 미니 플레밍 호보백은 사워구미를 연상시키는 비즈로 장식해 경쾌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국 최초로 브랜드 탬버린즈가 단독 초청한 오페라 퍼포먼스 그룹 선앤씨(SUN&SEA). 빛, 건축, 음악이 결합된 독창적인 무대 위에서 ‘끝나지 않는 여름날의 해변’을 뮤지컬 형식으로 풀어낸다. / 눌러서 영상 보기

 

한국에서 감각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브랜드로 젠틀몬스터를 들 수 있다. 하우스 도산, 신사동 플래그십 매장에서는 키네틱 오브제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탬버린즈는 세계적인 오페라 퍼포먼스 그룹 선앤씨(SUN&SEA)와 협업해 성수동에서 여름 신상품 블루 히노키를 테마로 한 팝업스토어를 열고 시각과 청각, 후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공간을 연출했다.

누데이크 역시 ‘명상의 맛(Taste of Meditation)’부터 피크닉, 뮤지엄 등 디저트에서는 생소한 테마를 기반으로 다양한 감각적 아이템을 선보이며 시각 중심의 리테일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브랜드들은 단순히 상품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매장 내에서 구현되는 감각적 분위기와 새롭고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소비자의 기억에 각인되고 결국 브랜드 매출 향상으로 연결시키고자 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시각, 후각, 촉각 등 멀티센서리 단서들은 브랜드와 연결돼 소비자를 색다른 감성으로 연결시키며 자발적인 소셜미디어 공유를 이끌어내 브랜드 차별화에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향후 경험 마케팅을 기획하는 이들이라면 브랜드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감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비자에게 보다 즐거운 바이브를 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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