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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Brand

에이스호텔_ 우리가 사랑하는 분위기

 

글 우지경 / 여행작가. 저서 <쓰기 위해 또 떠납니다>, <리얼 포르투갈>, <스톱오버 헬싱키> 외 다수.

 


 

시애틀, 뉴욕, 브루클린, 팜스프링스, 교토, 시드니, 토론토, 아테네, 하나같이 제각각이다. 같은 호텔 브랜드인데 로고 글씨체가 다르다. 로비도, 객실 인테리어도 다채롭다. 그러나 묘하게도 어느 도시에서 체크인을 해도 ‘음, 여긴 에이스호텔이군’이라는 느낌이 든다. 통일된 컬러나 로고, 카피 대신 일관된 ‘분위기와 태도’를 전하며 ‘라이프스타일 호텔’이라는 장르를 연 에이스호텔 이야기다.

 

 

노는 형이 만든 문화 교류 공간

여느 브랜드 체인과 결이 다른 에이스호텔은 태생부터 남다르다. 창업자 알렉스 칼더우드는 1980년대부터 음악과 DJ 파티를 즐겨온 ‘노는 형’이었다. 호텔 경영 경험은 전무했지만 DJ 파티와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을 모으는 데는 전문가였다. 칼더우드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친구 웨이드 웨이겔과 아메리칸 클래식 바버숍 루디스(Rudy’s)를 운영했다. 루디스는 이발만 하는 곳이 아니라 음악을 매개로 문화를 교류하는 공간이었다. 칼더우드는 웨이겔과 시애틀 외곽에서 루디스의 새 지점을 찾던 중 방이 28개인 오래된 건물(해양 노동자 사회 복귀 훈련시설이었던)을 발견해 바버숍과 호텔이 결합된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화려한 호텔이 아니라 뮤지션, 아티스트 등 친구들이 느긋하게 머물며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컨셉으로 정하고, 빈티지 가구와 로컬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내부를 채웠다. 정형화되지 않은 분위기로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을 지향하며, 호텔 이름도 포커의 카드 에이스(Ace)로 정했다. 에이스는 가장 강한 카드인 동시에 어떤 숫자든 될 수 있는 유연한 카드이기에. 1999년 시애틀의 정서를 진하게 녹인 ‘로컬 호텔’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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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고급스러운 호텔의 이미지를 벗어나 도시의 특성을 반영하고 문화 콘텐츠를 공유해 누구나 공간을 즐기도록 한 에이스호텔. / 출처 acehotel.com / 이미지를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호텔, 라이프스타일이 되다

에이스호텔 시애틀로 ‘로컬 호텔’이라는 성공을 맛본 칼더우드는 ‘아틀리에 에이스’ 팀을 만들어 2006년 에이스호텔 포틀랜드의 문을 열었다. 호텔을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여행자와 로컬문화를 잇는 구심점으로 보고 투숙객뿐 아니라 현지 사람들도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로비에는 포틀랜드에 본사를 둔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인 스텀프타운 커피를 입점시켰다.

그러자 에이스호텔 포틀랜드 로비는 로컬문화에 스며들고 싶은 여행자와 노트북을 들고 와 작업하는 로컬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이 됐다. 마치 커피와 음악, 일과 휴식이 뒤섞인 공유 오피스나 워케이션 공간처럼. 2009년 문을 연 에이스호텔 뉴욕 역시 공간 자체를 콘텐츠화하며 여행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여행이 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에이스호텔이 힙스터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뻔한 관광지보다 로컬의 취향이 묻어나는 공간에 끌리는 이들은 이 무드를 경험하고, 기록하고, SNS에 공유했고 그렇게 입소문 나는 호텔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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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호텔은 아티스트, 뮤지션들과 공간을 공유해 전시, 워크숍 등 지역 커뮤니티와 투숙객을 위한 프로그램 및 이벤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술 분야를 서포트하고 그들만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할 수 있다. / 출처 @acehotel / 이미지를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도시의 무드를 담아내는 큐레이션

에이스호텔은 그렇게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며 지점을 넓혀 나갔다. 어디를 가나 그 도시의 일부가 되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호텔의 로케이션을 정할 때에는 관광객이 붐비는 곳은 피하면서 지역 고유의 이야기가 깃든 건물을 찾아 임대료는 낮추고 레트로 하면서도 힙한 무드는 유지했다. 룸 인테리어도 호텔이 아니라 감각 있는 로컬 친구 집에 머무는 듯한 무드를 연출했다. 이를 위해 로컬 디자이너와 협업하고 객실에는 로컬 아티스트의 작품을 걸어 로컬 큐레이션을 유지했다.

이를 테면 에이스호텔 브루클린의 객실은 뉴욕의 힙한 스튜디오처럼 멋스럽다. 격자창 너머로는 햇살이 스미고 빈티지한 소파와 턴테이블, TV 옆에 무심하게 놓인 기타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난다. 이런 공간에 머물다 보면 호텔이 아니라 ‘뉴욕의 힙한 동네 브루클린의 집에 살아보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에이스호텔에 체크인한다는 것은 그 도시에 체크인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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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호텔마다 다양한 의류, 생활용품, 예술작품 등의 머천다이즈 상품을 기획, 판매해 재미를 더한다. / 출처 shop.acehotel.com / 이미지를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아시아 첫 지점으로 선택한 교토

에이스호텔은 아시아 첫 지점을 일본 교토에 열었다. 로컬 문화가 깃든 라이프스타일 호텔을 표방해온 그간의 행보를 생각하면 왜 교토인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본에서도 가장 일본다운 도시로 꼽히는 교토 에이스호텔에는 근대 건축가 테츠로 요시다가 만든 교토중앙전화국 건물과 현대 건축가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신관이 공존한다. 구마 겐고는 두 건물이 마주하는 중정에 헤이안 시대의 정원 스타일을 차용해 투숙객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게 했다.

객실에는 아메리칸 빈티지 가구와 일본 아티스트의 작품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에이스호텔 교토의 로비에도 스텀프타운 커피가 자리한다. 교토의 정취와 힙한 감성이 어우러지는 호텔에 머무는 동안 유행을 넘어 시대의 감각을 담아내는 공간을 누리는 기분이 든다. 여행자에게는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마시고,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모두 ‘영감’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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