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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d-Issue

선택에 확신을 갖도록 설계하라

 

글 김지헌 /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이자 브랜드 심리학자. 일반인에게 마케팅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칼럼, 강연 등을 통해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이름보다 브랜딩>, <마케팅 브레인>, <디스 이즈 브랜딩> 등이 있다.

 


 

사과밭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입구에서 출발해 출구까지 걸어가면서 단 한 개의 사과만 가져갈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사과를 발견했다. 그런데 손을 뻗으려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조금만 더 가면 더 크고 맛있는 사과가 있지 않을까?' 결국 사과를 집지 못한 채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 그러다 또 다른 사과를 만나면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그렇게 망설이다 출구에 도착하면 문득 후회가 밀려온다. '아까 그 사과를 고를 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지나온 사과를 다시 고를 수도, 앞으로 어떤 사과가 있었을지 확인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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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FOBO(Fear of a Better Option)다. 지금 선택하는 순간 어딘가에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미루는 심리다. 오늘날 소비자는 제품을 고를 때도 같은 경험을 한다.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 끝없이 리뷰를 비교하고 여행 숙소를 예약하면서 수십 개의 후보를 오간다. 결정을 내린 뒤에도 ‘조금만 더 찾아볼걸’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이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이 애초에 모든 대안을 비교하며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데 있다. 행동경제학은 오래 전부터 인간을 ‘최적의 선택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bounded rationality)을 하는 존재’라고 설명해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우리는 결혼 상대를 고르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보지 않는다. 직장을 선택하기 위해 모든 회사를 경험하지도 않는다. 모든 제품을 비교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결국 FOBO를 해결하는 핵심은 소비자가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선택이다'라고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브랜드는 두 가지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비자를 대신해 만족스러운 선택을 해주는 전략이다. 다시 말해 신뢰할 수 있는 큐레이션(Curation)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온라인 패션 플랫폼 ‘스티치 픽스(Stitch Fix)’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객이 자신의 취향과 체형을 입력하면 AI가 먼저 후보 상품을 선별하고 마지막에는 인간 스타일리스트가 다섯 벌의 옷을 직접 골라 보낸다. 고객은 이중 원하는 제품만 남기고 나머지는 반품하면 된다. 기술적으로는 AI만으로도 추천이 가능하지만, 패션처럼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제품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안목이 더 큰 신뢰를 준다. 스티치 픽스는 옷뿐만 아니라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선택을 했다’는 믿음까지 제공한다.

 

 

 

 

두 번째는 소비자가 스스로 만족스러운 대안을 쉽게 찾도록 돕는 전략이다. 선택지 자체를 없애는 방법이 가장 직접적이다. 미국 치킨 프랜차이즈 ‘레이징 케인스(Raising Cane's)’는 메뉴를 사실상 하나의 콤보 중심으로 단순화해 큰 성공을 거뒀다. 소비자는 치킨 핑거, 감자튀김, 코울슬로, 토스트로 구성된 기본 메뉴를 주문한 뒤 일부만 취향에 맞게 조정하면 된다. 선택지가 줄어들수록 '혹시 더 좋은 메뉴가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함께 줄어든다. 물론 모든 브랜드가 이 전략을 사용할 수 있지는 않다. 선택지가 너무 적으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없을 수도 있고, 다양한 상품을 갖춘 점이 경쟁력이 되는 업종도 많다.

 

 

미국 치킨 프랜차이즈 ‘레이징 케인스’는 메뉴를 단순화해 소비자의 선택을 쉽게 만들었다. / 출처 @raisingcanes

 

 

그렇다면 선택지는 유지하면서도 선택을 쉽게 만들 수는 없을까? 수많은 대안을 항목화(Categorization)해 구조화된 선택을 만드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50종의 파스타를 아무런 구분 없이 나열하면 소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하지만 먼저 오일∙크림∙토마토처럼 소스를 바탕으로 범주를 나누고, 다시 각 범주를 해산물∙고기∙야채로 세분화하면 소비자가 한 번에 비교해야 하는 선택지는 3~4개 수준으로 줄어든다. 메뉴 수는 그대로지만 선택은 훨씬 쉬워진다. 2명씩 비교해 선택하는 토너먼트 방식의 ‘이상형 월드컵’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중요한 점은 선택의 수가 아니라 한 번에 비교해야 하는 대안의 수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수많은 선택지를 제시하되 선택의 기준이 돼줄 대표 안을 제안하는 것. 서브웨이의 '썹픽(Sub Pick)'이 대표적이다. 소비자는 처음부터 모든 재료를 직접 고르기보다 브랜드가 추천한 메뉴를 기준으로 필요한 부분만 수정하면 된다. 선택의 자유는 한껏 열어두되 완전히 처음부터 선택해야 하는 부담은 줄여준다.

 

 

 

 

브랜드가 소비자의 선택을 대행하든, 소비자가 만족스러운 대안을 쉽게 찾도록 돕든 목표는 하나다. 소비자가 '혹시 더 좋은 선택이 있지 않을까?'라는 불안 때문에 구매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불상사를 막는 것. FOBO 시대에 브랜드의 역할은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가 더 이상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소비자가 자신의 선택을 만족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마케팅을 설계해야 앞으로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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