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윤승진 / 대한민국 최초 비즈니스 학습 여행사 ‘만나통신사’ 대표. 중국 현지 시장에서 발견한 여러 인사이트를 통해 한-중 비즈니스 연결에 앞장 서고 있다.
매주 한국 오피니언 리더들과 중국을 오가며 혁신의 현장을 마주한다. 그중에서도 중국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곳이 있다. 기존의 유통 공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허마셴셩(盒马鲜生)'이다. ‘신유통(New Retail)’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곳은 알리바바 그룹이 주도해 만든 브랜드다. 쿠팡과 같은 빅테크 기업이 도심 곳곳에 직접 대형 슈퍼마켓을 열고 창고, 쇼룸, 나아가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처럼 허마셴셩은 오프라인 매장에 온라인 주문과 물류 시스템을 결합한 리테일 실험실이다. 그렇다면 허마셴셩의 수많은 혁신 가운데 무엇에 주목하면 좋을지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3km가 바꾼 소비자의 생활 반경
첫 번째 키워드는 ‘허세권(盒区房)’이다. 허마셴셩 매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장면은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쉴 새 없이 이동하는 장바구니다. 고객이 앱으로 주문하면 매장 곳곳에 배치된 직원이 전용 단말기(PDA)를 들고 상품을 직접 피킹해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렇게 담긴 상품은 천장 레일을 타고 후방 배송 구역으로 이동한 뒤 포장을 거쳐 배달 라이더에게 전달된다. 고객이 눈으로 보고 물건을 고르는 ‘판매 공간’이 온라인 주문을 처리하는 ‘물류 거점’으로도 작동한다.

이러한 물류 시스템은 ‘매장 반경 3km 내 30분 배송’을 가능하게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빨라진 배송 속도만이 아니다. ‘3km, 30분’이라는 시스템은 소비자의 생활 반경과 장보기 방식을 바꿔놓았다. 주말마다 대형 마트에서 일주일 치 식재료를 사다 쟁여두는 대신 퇴근길이나 요리하기 직전에 앱으로 필요한 식재료를 주문한다. 신선한 해산물과 채소가 30분 만에 집 앞으로 도착하니, 허마셴셩 매장이 집 밖의 ‘확장된 냉장고’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여기서 ‘허세권’이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허마셴셩의 배송 가능 반경 안에 있는 주거지를 뜻한다. 빠른 배송을 기반으로 한 운영 시스템이 소비자의 일상을 바꾸면서 허마셴셩을 이용할 수 있는 생활권 자체가 하나의 주거 가치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제 허마셴셩은 단순한 마트를 넘어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좌우하는 프리미엄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추상적인 가치를 숫자로 증명하다
두 번째 키워드는 ‘일일신(日日鲜)’이다. 모든 식품 브랜드와 유통사가 ‘신선함’을 강조하지만 눈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허마셴셩은 이 추상적인 가치를 직관적인 ‘숫자’와 ‘요일’로 보여줬다. ‘매일매일 새롭다’는 뜻의 ‘일일신’ 시리즈다. 월요일에 진열된 우유와 채소에는 ‘1(一)’이라는 글자와 고유의 색상이 표시된다. 화요일이 되면 해당 제품은 매대에서 사라지고 ‘2(二)’가 표시된 제품이 그 자리를 채운다.
소비자는 기업의 일방적인 선언만으로 브랜드를 믿지 않는다. 허마셴셩은 “우리는 신선하다”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만들었다. 포장에 표시된 숫자와 요일만으로 상품의 신선도를 가늠할 수 있어 소비자가 일일이 따져봐야 하는 검증 비용을 낮췄다. ‘일일신’은 단순한 상품 기획을 넘어 브랜드가 고객의 신뢰를 얻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상품 자체를 미디어로 만드는 법
세 번째 키워드는 '괴식(怪食)'이다. 허마셴셩은 이름부터 비주얼까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제품을 꾸준히 선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백마탄 왕자 주스’다. 화장실 세정제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색감에 이름마저 범상치 않다. 처음 보면 선뜻 손이 가지 않지만, 알고 보면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료다.
이처럼 엉뚱한 색깔과 기발한 네이밍의 조합은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소셜 미디어 시대의 소비자를 겨냥한 콘텐츠 전략이 숨어 있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식품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을 넘어 사진을 찍고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는 ‘소셜 화폐(Social Currency)’이기도 하다. 허마셴셩은 호기심과 밈(Meme)을 동시에 자극하는 상품으로 샤오홍슈와 더우인 같은 SNS 플랫폼에서 자발적인 바이럴을 일으킨다.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여 광고 매체를 사는 대신 상품 자체를 화제성 높은 미디어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화제성은 오프라인 매장으로 고객의 발길을 이끌고, 자연스럽게 앱의 트래픽으로 이어진다. 상품 기획 자체가 마케팅이자 콘텐츠가 된다.

허마셴셩은 단지 ‘앱으로 주문하면 물건이 빨리 오는 마트’가 아니다. ‘허세권’을 통해 프리미엄 인프라로 자리 잡고, ‘일일신’을 통해 추상적인 가치를 직관적인 시각 언어로 증명하며, ‘괴식’을 통해 기발한 상품 자체를 마케팅 채널로 활용하는 고도로 정교한 리테일 시스템이다.
매주 중국 현지에서 다양한 비즈니스 리더들과 토론을 나누다 보면, 결국 혁신은 거창한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고객의 인식과 일상을 재정의하는 통찰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마케터라면 허마셴셩이 던지는 이 세 가지 화두를 우리의 비즈니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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